본문 바로가기

Digital Convergence

누가 우리의 경쟁사인가를 답하기 어려워졌다

   이 물음에 답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졌다. 경쟁의 개념이나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경쟁이 주로 같은 업종 내에서 이뤄졌다. 일본 시장에서 도요타의 경쟁자는 닛산, 혼다 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닌텐도나 소니 등도 경쟁 상대로 가세했다. 왜 그럴까? 과거 일본 대학생들은 취직해서 `마이 카`를 갖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요즘 대다수 일본 젊은이들은 이 꿈을 접었다. 자동차 대신 게임기인 닌텐도 `(Wii)`나 소니의 PS3를 구입한다. 소비에서 경쟁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기업을 업종에 따라 분류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업종 내 경쟁의 의미는 퇴색됐다. 도요타는 엔진ㆍ기계장치 제조, 조립 공정을 빼면 사실상 전자회사다. 전자장치는 물론 로봇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혼다는 회사명 자체가 `혼다자동차`가 아니라 `혼다기술연구소`. 많은 기업은 회사 이름만 들어서는 어느 업종에 속해 있는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전구를 만들던 GE는 금융사업이 핵심 사업 중 하나다. P&G 등 많은 다국적기업도 주력 업종이 계속 바뀌고 있다. 금융업에서도 은행, 보험, 신용카드 등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금융회사의 영역 구분도 모호해졌다. 인터넷 검색회사로 출발한 구글은 구글폰, 구글TV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는 구글이 도요타의 최대 라이벌로 부상할 수 있다. 구글이 중국의 모 자동차회사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자동차를 주문하고 구글맵과 각종 텔레매틱스를 장착해 소비자들에게 공짜로 나눠준 뒤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수료만 받는 비즈니스 모델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제 경쟁은 기업끼리가 아닌 사업 부문 간으로 세분화되는 양상이다. 예를 들어 소니와 삼성은 TV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서는 협력하고 있다. TV LCD 패널을 만들기 위해 공동으로 S-LCD를 설립해 여기서 나온 제품을 절반씩 배분한다. 애플은 또 어떤가. 스마트폰에서는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그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핵심적인 반도체 부품은 삼성에서 조달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최고의 선()으로 추구됐다. 사업다각화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기자는 2005년 말 당시 혼다의 후쿠이 다케오 사장에게 물었다. "왜 오토바이 메이커로 출발한 혼다가 자동차 분야에까지 진출했느냐". 후쿠이 사장은 "그동안의 경험상 오토바이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상대적으로 자동차가 괜찮았고, 자동차 수요가 급감한 때는 오토바이 판매가 늘어나 급격한 실적 악화를 막았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오토바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역설적이지만 자동차 분야 다각화가 꼭 필요했다는 설명이었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기업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경쟁 양상은 달라진다. 게임판이 달라지고 게임의 룰도 바뀐다. 당연히 승자와 패자가 나온다. 따라서 경쟁의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시대엔 CEO의 통찰력이 중요하다. 미래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3월 복귀 때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사라질 것"이라고 한 발언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
산업부 = 김대영 차장 kdy@mk.co.kr]